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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하원 사람이우다
새우골  2016-08-18 18:18:29, 조회 : 163, 추천 : 27

나는 하원 사람이우다    

애향문고 강 회장으로부터 원고 청탁을 받고 심 봉사 시주 약속하듯 선뜻 '그러겠노라'고 했는데 막상 글을
쓰려드니 붓이 잘 나가지 않는다. 선뜻 약속을 한 이유는 아직도 내 혈관 속에 면면히 흐르는 고향에 대한
사랑 때문이요, 그럼에도 붓이 잘 나가지 않는 이유는 '고향에 대한 생각'은 많았으나 막상 '고향에 대한 행동'은
없었기 때문이다. 지난 세월을 돌이켜 보면 고향에 대해 한 일이 하나도 없어 부끄러울 뿐이지만 어쨌든 작가로서
글을 쓴다고 약속을 했으니 염체불구하고 몇 가지 추억을 적어 보내며 고향의 독자들에게 양해를 구한다.

수학여행

초등학교 시절 수학여행을 생각하면 50년 전 일이니 정말 아득하다. 지금이야 비행기 타고 육지로들 다니지만
그때는 트럭에 장작과 솥을 싣고 밥 지어 먹어가면서 2박 3일로 제주를 한 바퀴 도는 것이 전부였다. 그렇다고 흥분과
설렘이 결코 지금만 못하지는 않았다. 제주시에 가서 하늘을 찌를 듯 서있는 고층 건물을 보고 얼마나 신기하던지!
물론 고층건물이래야 5층짜리 빌딩이었다. 그러나 세상에 2층짜리 집도 제대로 보지 못하던 촌놈이 5층짜리 집을
봤으니 얼마나 높아 보였겠는가! 당시 제주시에 있었던 주정 공장에 가서 구멍이 숭숭 뚫린 철판으로 된 3층 바닥을
지나가려면 다리가 후들거려서 혼났다는 거 아닌가? 수학여행 이야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당시 집집마다 형편이
어려웠던 터라 수학여행비도 고구마 이삭줍기를 해서 마련했다.

오전 수업을 끝내고 나면 2인 1조가 되어서 고구마를 캐낸 밭에 가서 땀을 뻘뻘 흘리며 호미로 이삭줍기를 했던
것인데, 어느 주인이 우리 좋으라고 고구마를 설렁설렁 캐겠는가? 고구마는 잘 나오지 않고 팔은 아프고 목도 말라서
정말 힘들었다. 그러던 어느 날, 고구마를 캔 뒤 밭에다 무더기로 모아서 넝쿨로 덮어 놓은 것을 보았다. 서로 말이
필요 없었다. 눈짓 하나로 동시에 담을 넘어가서 허겁지검 고구마를 마대에 주워 담는데 어디선가 천둥치는 소리가
들렸다. 밭주인이 보고 쫒아왔던 것인데, 고구마는 천리만리 내 팽개친 채로 걸음아 날 살려라 하고 튀어서 다행히(?)
붙잡히지는 않았다. 다음날 학교에 갔더니 담임선생님이 신고가 들어왔다며 자수를 권유하는데 둘이 눈만 끔뻑이며
차마 나서지 못했다. 결국 그렇게 고구마 사건은 미제로 남고 어쨌든 수학여행은 다녀왔는데 지금도 생각하면 밭주인과
담임선생님한테 미안하다. 그때 2인1조로 같이 튀었던 하원 친구는 누구이던가? 나 하나 나쁜 놈 되는 걸로 족하니
무덤까지 비밀을 안고 가련다.

청혼 미수

어릴 때 가장 많이 하던 놀이는 곱을락(숨바꼭질)이었다. 술래가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를 연달아 욀 때 아이들은 우우
몰려서 저마다 숨을 곳을 찾아 이리저리 내달렸는데 내가 가장 잘 숨던 곳은 커다란 눌(낟가리) 밑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변함없이 홰홰 내달려 눌 밑을 찾아 들었더니 먼저 온 여자아이가 숨어있었다. 황순원의 '소나기'에 나오는
윤 초시의 증손녀까지는 아니어도 어느 고을에나 인기 있는 여자 아이는 있게 마련인데, 바로 그런 아이가 나와 같이 한
눌 밑에 숨어서 얼굴을 맞대고 서로의 숨결을 느끼며 한참을 바라보게 된 것이다. 아무리 어려도 사내들이란 다 그렇지 않은가.

그날 밤 계속 그 애 생각만 했다. 그리고 다음 날도 역시 곱을락을 하는데 오오 이게 무슨 운명의 장난이란 말인가? 다시 찾아
들어간 눌 밑에는 그 아이가 먼저 와 있었던 것이다. 첫날은 우연이었겠지만 두 번은 그럴 리가 없다. 가슴을 콩닥거리며 가쁜
숨만 몰아쉬다가 드디어 거사를 하고 말았는데, 그 아이의 두 손을 와락 쥐면서 '우리 크면 꼭 같이 살자'고 청혼(?)을 한 것이다.
아! 그런데 그 아이가 막 대답을 하려는 순간 안타깝게도 술래가 우리를 찾아냈고 그 후 영영 확답을 듣지 못하고 말았다. 지금
아이들도 곱을락을 할까? 이제는 눌도 사라지고 길도 달라졌지만 그때 눌이 있던 곳을 지나노라면, '지금은 어디에서 나처럼
늙어갈까' 하고 그 아이가 생각난다. 그때 하려고 했던 그 아이의 대답이 '그래! 같이 살자!'였을지는 이제 와 생각해보니 확신이
없지만... 벗들 만나면 그 아이 소식이 궁금해서 슬쩍 물어볼까 하다가도 이내 눈치 챌 것 같아서 역시 무덤까지 비밀을 안고 가련다.  

야인 시대

한 30년 전 일이다. 서울 보성고에서 교사를 하던 시절인데 여름방학을 맞아서 고향에를 내려갔다. 중문 읍내에서 서울 친구를
만나 술을 거나하게 했는데 시간이 자정이 넘었지만 예나 지금이나 딱 한 잔이 부족했다. 그래서 둘이 '딱 한 잔만 더 하기'로 약속
하고 술집을 찾는데 서울 같지 않아서 문을 연 곳이 없었다. 당시 우체국 앞을 몇 번이나 왔다 갔다 하며 시끄럽게 구는 우리를 유심히
지켜보던 한 젊은 친구가 말을 걸어왔다. '어이구, 아저씨들! 약주가 많이 되신 거 같은데 왜 빨리 집으로 안가고 그러셔요... 들?'
그러자 동료가 대뜸 야단을 쳤다. '떽! 젊은 사람이 어른한테 말버릇이 그게 뭐야? 어디 근처에 술집 하는 곳이나 대봐라, 이놈아!'

그러자 이게 웬일인가? 혼자인줄 알았는데 우체국 셔터 앞 그늘에서 젊은이들이 여러 명 우 몰려나오면서 하는 말이 '놈이라니?
서울 놈들은 무조건 놈놈 하는가본데 여기는 서울이 아니여!'라는 게 아닌가? 꼼짝없이 시비가 붙은 건데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주위를 둘러봐도 지나가는 사람이 없다. 이때 필요한 것은 무엇? 바로 본토 말이다. 지체 없이 내 입에서 '나 서울 사람 아니란 하원
사람이우다!'가 튀어나갔다. 그러자 셔터 앞 어둠 속에서 또 다른 목소리가 들려왔다. '학굔 어디 나와수과?' '나 중문 중 나왔져!
아무아무개가 우리 동창이여!' 그러자 그 목소리가 '에이 그거 참. 혼저 집에 갑서!'란다. 아 살았다, 그러는 찰나 처음에 시비를 걸었던
친구가 '아니 그냥 보낼 꺼꽈? 담배 값이라도 받아사 헐 꺼 아니?' 하는 순간 집에 가라던 목소리의 주인공이 튀어나오면서 그 친구의
뺨을 냅다 갈기는 것이었다. '야! 우리 선배라잖아? 찬물도 위아래가 있는데 무슨 말이 그렇게 많아!' 그리고는 빨리 가라고 손짓을 한다.

그날 정말 운이 좋았다. 얼떨결에 중문 읍내에서 '한 가닥 하는 동창'이라고 이름을 댔던 그 친구는 누구였을까? 역시 무덤까지 비밀을
안고 가련다. 굴곡 많았던 그 친구도 이제는 이 세상 사람이 아니라 고향 하늘 아래 푸른 바다 바라보며 안식을 취하고 있기 때문이다.  

文鄕 河源

필자는 12년 전에 30년 여년의 서울 생활을 청산하고 강원도 화천읍 동촌리라는 곳으로 내려와서 집필실을 마련하고 글을 쓰며 조그맣게
농사도 짓고 있다. 외국에 나가보면 누구나 애국자가 된다는 말이 있듯이 시골 마을로 귀농을 하고 살아보니 새삼 고향 하원을 다시 보게
된다. 우선 마을 규모에서 비교가 되지 않는다. 이곳은 70여 가구 100여명의 주민이 사는 곳이지만 하원은 600여 세대에 1500명의 주민이
사는 마을이니 가히 大處라고 할 만 하다. 그리고 이런 量보다도 質的인 면에서 더욱 놀란다. 얼마 전 아버님 한시집을 발간하느라 자료를
뒤지다가 '하원한시동호회 시집'이라는 책을 보게 되었다. 거기에는 많은 고향 어르신들이 산천과 계절을 노래하고 충의와 도덕, 역사를
읊은 주옥같은 글들이 실려 있었다. 특히 몇몇 분의 글은 작가의 눈으로 봐도 놀랄 만큼 대단한 감수성을 가지고 쓴 시가 많아서 고향 어른
들을 그냥 시골에서 농사짓는 분들로만 생각했던 나의 좁은 소견이 여지없이 깨져나갔다.

더구나 그 옛날부터 '하원찬가'라는 노래를 지어서 불렀을 정도였으니, 나는 예부터 부르던 '良村 하원' 위에 '文鄕 하원'을 더 붙이고 싶다.
어떤 일이든지 시종일관하기가 어려운 법인데 애향문고가 35주년 동안 좋은 일을 많이 하면서 나날이 발전 해온 것도 다 그런 연원에 기인
하는 것이라고 본다. 애향문고 35주년을 멀리서나마 진심으로 축하드리며 무궁한 발전이 있기를 기원한다.  

고향 중문 하원 애향 문고 35주년 기념회지 게재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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