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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농의 길 17 - 철새와 텃새
새우골  2009-09-01 08:39:43, 조회 : 1,000, 추천 : 133



오랜만에 귀농 이야기를 쓴다. 이제 앞으로 한 두 회를 더 쓰면 귀농 이야기도 마무리를 해야
할 때가 된 것 같다. 그 다음의 귀농 이야기는 필자가 운영하는 홈페이지의 ‘새우골 일기’를 보면
그 뒤로 살아가는 모습이 다 기록되어 있다. 오늘은 귀농자들에 대한 현지인들의 ‘텃세’문제를
다루어 보자.  

조선 후기 때 사람 이중환의 ‘택리지’를 보면 선비가 살 곳을 선택할 때 참고해야 할 네 가지를
이야기하고 있는데 - 地理, 生利, 人心, 山水다. 이 중에 이중환은 지리를 최우선으로 꼽고 있는데
다소 풍수지리설의 영향을 입은 바가 있고, 또 ‘사대부’라는 특정 계층이 살 곳을 생각하다 보니
일종의 ‘명당’ 자리를 염두에 두고 있는 듯 하다.
요즘 귀농을 하고자 하는 젊은 층들은 무엇보다도 生利를 우선으로 할 텐데 그것은 돈을 벌어야한다는
대 전제가 있기 때문에 그렇다. 나이가 든 사람들이 우선적으로 고려하는 것은 산수다. 흔히 말하는 공기
좋고 물 맑고 경치 좋은 곳을 찾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지금까지의 경험상 人心을 최우선으로 하라고 권하고 싶다. 시골로 간다면 웬만한 곳은 다
도시보다는 공기 좋고 물 맑은 곳이다. 또한 어디에 있어도 자신이 제대로 노력한다면 다 벌어먹고 살
수 있다고 본다. 그리고 배산임수, 좌청룡 우백호 식의 명당은 일리는 있지만 오늘 날 그렇게 따질 것이
아니라고 본다.
귀농자의 가장 중요한 본질은 다른 곳에서 살다가 온 사람이라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곳에 이전부터
살고 있는 사람들이 어떻게 대해 주느냐에 따라서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느냐, 불행한 삶을 사느냐의 갈림길이
되는 것이다. 행복과 불행까지는 아니더라도 마음이 편안한 삶이냐 아니냐는 분명히 갈라진다. 조금 더 첨가
한다면 재미있는 삶이냐 아니냐가 귀농지의 인심에 의해서 좌우되는 것이다. 그것은 고향으로 간다 하더라도
마찬가지이다. 고향이라고 해서 모두 다 따뜻하게 맞아주는 것은 아니다.
물론 돈 있는 사람이 그야말로 좋은 전원주택을 지어놓고 남의 간섭 안 받고 혼자 잘 먹고 잘 살기로 작정
한다면 동네의 인심이야 이렇든 저렇든 별 상관이 없을 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것은 별장 같은 주거를 지닌
전원생활이지 ‘귀농’이 아니다. 농사를 지어야만 귀농이 되는 것은 아니지만 내가 생각하는 귀농은 적어도
동네 사람들과 어울려 살아가는 삶을 말한다. 현지인들과 같이 슬퍼하고 같이 기뻐하고 같이 일하고 나중에는
그야말로 귀농자도 현지인이 되어버리는 그런 삶을 나는 ‘귀농’이라고 생각한다.
이곳 동촌리에도 나보다 먼저 들어와서 조금 떨어진 곳에 좋은 집짓고 혼자 사는 이가 있다. 그는 동네일에
관여하지 않고 같이 어울리지 않으며 어떤 일이 있을 때 자신의 이익을 먼저 생각할 뿐 동네 사람의 입장은
나중이다. 그래서 때로는 동네 사람들로부터 많은 욕을 얻어먹기도 한다. 일례를 들어 자기 집에 민박 시설을
지으면서 사람들이 노는 곳이라고 집 앞 계곡으로 통하는 길을 만들었는데 그 계곡은 나를 비롯한 여러 집이
식수로 먹는 물이었다. 그래서 이의를 제기 했는데 ‘나 돈 벌려고 하는데 당신들이 무슨 상관이냐’는 것이다.
정 찜찜하면 취수원을 더 위로 뽑으라는 것이다. 어불성설. 그러다 보니, 동네 사람 그 어느 누구도 그를
이웃으로 생각하거나 걱정하거나 반겨주지 않는다. 마치 그곳에 그가 있어도 주민들은 그곳에 ‘사람’이 없는
것처럼 생각한다. 이런 삶은 본인에게는 ‘자유’일지 모르나 의식이 있는 ‘귀농’은 절대 아니라고 본다.

사람들과 어울려 살면서 사람 냄새를 맡고 나도 사람이 되어서 오가며 살려고 한다면 결국 인심이 중요한
것이다. 물론 어느 곳이나 사람 사는 곳에는 여러 종류의 사람이 있게 마련이다. 그러나 전체 주민들의 성향이
어떤가 하는 것은 분명 차이가 있다. 그런 면에서 동촌리는 정말 인심 좋은 곳이라고 생각된다.    

그러나 오던 첫해에는 나도 사무장 일을 시작해서 6개월이 지날 때까지 동네 청년들과 관계를 트지 못했다.
서로 인사는 하지만 마음을 열지 않았고, 연수원 일도 네 일이지 내 일은 아니다 식으로 대했다. 물론 외부
행사가 있을 때는 그들의 일이 아니다. 그러나 마을 자체 행사가 있을 때는 주민들만 모여서 먹고 마시고 놀기
때문에 ‘우리의 일’인데도 모두 나몰라라하고 먹고 놀기만 했다. 그러면 심부름꾼인 나는 열심히 고기 굽고 술
나르고 행사 뒤 청소하는 일을 도맡아 했다. 한번은 마을 행사가 있어서 먹고 논 뒤에 청년들이 족구를 하는 데,
치우느라 정신이 없는 나에게 한 사람이 다가와서 ‘같이 공 좀 차시지요.’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죄송합니다.
보다시피 지금 바빠서요.’라고 했더니 대뜸 한다는 말이 ‘아, 먹물 많이 드신 분은 저희들 같은 사람하고는
공차기 싫다 이거지요? 그러지 맙시다.’라고 하는 게 아닌가? 그러고는 뭐라고 해명할 틈도 주지 않고 돌아
서서 휑하니 가버리는 것이었다.

이장도 처음에는 별반 다르지 않았다. 어쩌다가 누구하고 술 한 잔을 하면 ‘여기 사무장 들어와서 일하는
놈들은 전부 술꾼들이어서 문제다. 동네 청년들 하고 술 먹지 마라.’고 대놓고 말했다. 누구하고 놀지 마라,
누구는 안 좋은 놈이다, 누구는 동네일에 비협조적인 놈이다 등등 아예 선을 그어 놓고 일방적으로 지시했다.
그러면서 항상 하는 말이 ‘당신이 어디서 어떤 일을 하다가 어떤 사연으로 여기까지 오게 되었는지는 묻지
않겠다. 그냥 내 말만 잘 들으면 하루 세끼 밥 먹는 데는 지장 없도록 해주겠다.’는 것이었다. 어찌 보면
마음으로 도와주겠다는 말처럼 들리기도 하지만 또 어찌 보면 당신의 전과는 문제 삼지 않겠다, 밥은 굶지
않을 테니 걱정 말고 내 시키는 대로만 해라는 말처럼도 들렸다. 그러거나 말거나.... 그런 것들에 일일이
마음 쓸 거였다면 마을에 들어와서 사무장 일을 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오로지 두 가지 - 첫째, 이런 일도
다 경험이다. 돈 주고 해보려고 해도 해 볼 수 없는 일이다. 둘째, 이런 일 하나도 제대로 견뎌내지 못하면
도대체 귀농해서 무슨 일을 제대로 해내겠는가? - 였다.

그렇게 6개월여 세월이 흐른 2005년 10월 9일 - 동촌리의 마을 축제가 있는 날이었다. 그날도 다른 날과
다름없이 숯불 피우고, 고기를 나르고 굽고 정신이 없는데 청년들이 모여 있는 자리로 안주를 들고 갔더니
누군가가 ‘거 사무장님도 오셔서 같이 한 잔 하시지요?’라고 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아 보다시피 바빠서
틈이 나지 않습니다.’했더니 이어서 ‘아 저희가 좀 도와 드릴 테니까 이리 와서 한 잔 하세요’라고 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정말입니까? 그러시다면야 정말 고맙지요.’하고는 다가가서 술을 한 잔 받는데 또 ‘저기
나이도 있고 하신데 말씀 낮추시지요. 저희가 형님이라고 부르겠습니다.’ 이러는 게 아닌가? 왜 마다
하겠는가? ‘아이구 괜찮으시다면 그렇게 합시다. 그럼 지금부터 말 놓는다.’ 꼭 반 년이 지난 시점이다.
그날은 청년들이 심부름도 거들어 주고 나중에 회식 자리를 치울 때도 다 같이 달려들어서 함께 마무리를
해주었다.
우리말은 희한한 특성이 있다. 존대를 하던 사이가 반말로 허물어지면 친구사이일 경우 아주 격의 없는
사이가 되고, 위아래일 경우 불가피하게 서열이 생겨 버린다. 그렇게 그날 말이 무너지고 형님이라고 호칭이
바뀐 뒤부터는 동네 청년들과 마치 옛날부터 알았던 사이처럼 술자리가 있으면 서로 부르고 일도 도우면서
격의 없이 형님, 아우로 지내게 되었다.

두 해 전인가 홍천에서 강원도 귀농자들이 모여서 세미나를 한 적이 있다. 그 때 주제가 ‘철새와 텃새’였는데
광덕리에 있는 ‘시골교회’의 임락경 목사가 특강을 했었다. 그 분의 결론이 ‘철새는 텃새를 이길 수 없다.
텃새는 무조건 철새가 나갈 때까지 무리지어 쪼아댄다.’는 것이었다. 자연 현상을 빗대어서 귀농자들의
어려움을 이야기한 것인데 재미있고 일견 일리 있는 말이다. 그러나 나는 그 분의 말을 들으면서 ‘그건
새들의 이야기지. 사람의 이야기는 아니다.’라는 생각을 했던 기억이 난다.

사람도 새와 다를 게 없다면 할 말이 없지만 나는 ‘사람은 어디까지나 사람이지, 새가 아니다’라고 본다.
실제로 귀농자 중에는 현지인들과의 갈등을 이기지 못해서 마을을 떠난 사람들도 많다고 하고, 또 귀농
희망자들이 물어 오는 것 중에 ‘시골에 가면 텃세가 강하다는 데 어려움이 없었습니까?’라는 질문이 가장
많다. 그러나 나는 그런 질문에 ‘어렵지요’라고 답하지 않는다. 내 답은 항상 ‘귀농자가 하기 나름입니다.’이다.
어디인들 왜 텃세가 없겠는가? 그것은 당연한 것이다. 수백 년을 그곳에 발붙이고 살아온 사람들 속에 갑자기
누구인지도 모르는 사람이 들어왔을 때 본능적으로 ‘저 놈은 뭐하는 놈이여?’라는 경계심이 생기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이제 불과 5년 밖에 안 된 내 경우도 누가 가까이 와서 콘테이너를 들여 놓는 모습을 보면
‘저 사람은 또 뭐하는 사람이여? 근본은 제대로 된 놈인가? 허랑방탕 사기나 치며 돌아다니는 놈이나
아닌가?’라는, 반가움보다는 걱정과 방어심리가 앞선다. 하물며 조상 때부터 누대를 살아온 현지인이
느끼는 마음이야 어떻겠는가? 내가 나쁜 사람이 아니요, 해를 끼칠 사람이 아니요, 막 되먹은 사람이
아니요, 죄짓고 도망 다니는 사람이 아님을 알기 까지는 시간과 노력이 필요한 것이다.

그런데 대부분 내가 이곳에서 겪어본 ‘다시 떠난 귀농자’들의 경우를 돌이켜 보면 예외 없이 ‘선각자’
노릇을 하려고 한다는 것이다. 시골 사람들의 의식이 문제라느니, 농산물의 유통체계를 바꿔야 한다느니,
내가 좋은 직장도 내버리면서까지 이곳에 왔다느니, 유명한 누구를 안다느니 등등 자신을 먼저 내세우는
것이다. 그러면 임락경 목사의 말처럼 텃새들은 그야말로 그 잘난 철새의 정수리를 쪼아대기 시작한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알아 두어야 할 것은 시골 사람들은 면전에서 막 바로 험담을 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앞에서는 ‘아, 네네, 그렇군요. 대단하십니다.’라고 수긍하는 자세를 취한다. 그것은 서로서로
사돈의 팔촌 까지 연결되어 있는 시골 사회의 특성상 발 빠르게 단도직입적으로 나서는 것을 꺼리는
시골의 풍토다. 그러나 옳고 그른 것, 그런 것과 아닌 것은 다 안다. 그래서 돌아서서는 자신들끼리
품평회를 한다. ‘아 그 사람 허풍이 세기는.... 별 볼일 없는 사람인가비여.’가 되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풍토를 모르고 큰소리를 칠 때, 앞에서 ‘네, 네’하면 다 먹혀 들어가는 줄 알고 있다가 나중에
평판이 좋지 않게 나오면서 등을 돌리면 ‘야 시골 사람들이 뒤통수를 친다. 시골 인심이 더 무섭다.’라고들
한다.

이야기가 길어졌는데 다시 본론으로 돌아오면 시골 사람들은 ‘텃새’가 아니라 ‘텃사람’이다. 무조건 철새를
쪼아대지 않는다. 새는 서로 먹이를 지키기 위해서 무조건 공격하지만, 사람은 그렇지 않다. 받아들일만한
사람이라면 얼마든지 받아들이고 지켜주고 도와준다. 다만 처음에는 그 시간이 걸린다. 적어도 1 년 정도는
귀농자가 나를 알리는 데에 성심성의껏 노력해야 한다. 그것은 내가 잘 낫다는 것을 알리는 것이 아니라 꼭
같은 평범한 사람임을 알리는 것이다. 잘 낫다는 것을 알리고자 한다면 그것 자체가 위화감이 들어 버린다.
잘 난 사람인지 못난 사람인지는 현지인들이 판단하는 것이다.  

한번은 덩치가 웅장하며 머리를 길게 길러서 상투를 튼 아주 그럴듯한 친구가 마을 사무장으로 왔던 적이
있다. 그런데 이 친구가 술만 한 잔 하면 하는 이야기가 ‘동촌리를 약초의 성지로 만들기 위해 내가 왔다.
내가 여기 있다는 것을 방송에서 알기만 하면 마을이 시끄러워 질 것이다. 나는 노벨의학상을 받을
사람이다.’라는 것이었다. 아무리 보아도 미친 사람은 아닌데 그렇게 어마어마한 허풍을 치는 것이다.
말을 트게 된 동네 청년들에게도 ‘자네가 이렇게 살면 안 되는 것이야. 하늘과 땅의 이치를 알고 그 기를
받아서 눈이 뜨여야 되는 것이여!’라고 준엄하게 꾸짖는데 보통이 아니었다. 그런데 그 친구가 아내와 함께
마을을 떠난 것은 불과 들어온 지 두 달 만이었다. 그리고는 지금은 어디 가서 무엇을 하는지 아는 사람도
없고, 알려고도 하지 않는다. 왜 이 사람 이야기를 하는가? 중요한 것은 시골이 그런 사람들을 여러 번
겪는다는 사실이다. 그러다 보니 들어오자마자 큰 소리를 뻥뻥 치면 오히려 더 믿기지가 않는다. ‘저 친구는
언제 가려고 저러나?’하는 생각부터 드는 것이다.

정말 진지하게 자신을 낮추고,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시골 사람들에게서 배우고자 하고, 도움을 주는
사람이 아니라 내가 도움을 받는 사람이라는 것을 깨닫고, 시골 사람이 비록 산골에 살고 있다 해도 인생을
깨달아서 살아가고 있는 면에서는, 각박한 승부 일변도로 살아온 도시 사람인 나보다 오히려 더 훌륭하다는
것을 인정할 때 ‘텃세’는 그리 오래 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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