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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농의 길 11 - 농사는 아무나 짓나
새우골  2009-03-07 01:06:40, 조회 : 998, 추천 : 135


뒤집어진 경운기

옥수수 심을 밭을 만든다고 경운기로 밭을 갈 때의 일이다. 경사가 좀 심한 밭이었는데 생 날 초보가 무엇을
알랴? 아래쪽부터 쟁기를 들이댔는데 중간에 경사가 좀 심한 곳에를 가자 경운기의 기울기가 장난이 아니었다.
위태위태한 놈을 어찌어찌 갈아 가는데 어느 순간 덜컹하더니 휘청 경운기가 뒤집히고 말았다. 힘을 써도
소용이 없었다. 뒤집히면서 클러치 레버가 부러져서 이틀을 일 못했다. 그래도 달려온 집주인 영감님이 사람
안 다친 게 천만다행이라고 위로했는데 경운기 위험한 것을 그 때 알았다.

경사진 밭을 위쪽부터 갈았으면 위쪽 바퀴가 파인 고랑으로 들어가니 좀 나았을 텐데 그걸 반대로 갈았던
것이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다. 영감님은 지나가면서 뻔히 보아도 웃기만 한다. 그리고 넘어진 다음에야 와서
‘어이구 김 씨, 이렇게 해야 되는 기여!’라고 코치한다.

로꾸거!

고추밭을 만든다고 관리기로 두둑을 만들고 다음에는 피복기를 달아서 비닐을 씌웠다. 천 평이 넘는 밭을
혼자서 작업하는데 길 쪽에서부터 시작해서 밭 안 쪽으로 랄라라라 신나게 씌우기 시작했다. 그런데 보면서
지나가는 영감님이 또 알 수 없는 미소를 짓는다. 뭐라고 입속으로 중얼거리면서. 어허 내가 또 뭘 잘못하는
가보다 했지만 아무리 머리를 굴려 봐도 틀린 게 없다. 에라 모르겠다. 일단 씌우고 보자. 그런데 이상하다.
관리기가 힘이 없다. 앞에서 힘을 주고 잡아끌어야 겨우 달려온다. 기계가 중고라서 그런가 부다 하고 젖 먹던
힘까지 다해서 기계를 끌었다. 땀은 범벅이 되었다. 점심 먹으러 집으로 가는 영감님이 또 미소를 짓는다.
이런 정말, 저 야릇한 미소는 도대체 뭐지? 아이구 힘들어 나도 밥이나 먹고 하자.

점심을 먹고 나와서 또 기계를 돌리려고 하자 그제서야 슬금슬금 다가온 영감님 -

“김 씨, 기계가 잘 안 나가지?”

“어? 어떻게 아셨어요? 왜 이렇게 힘이 없는지 중고라서 그런가 봐요.”

라고 나름 이유를 댔더니 대뜸 하시는 말씀,

“중고 좋아하시네. 바퀴를 거꾸로 달았슈! 좌, 우가 바뀌었다구.”

이게 무슨 소리? 피복기 바퀴에 좌, 우가 있다는 것쯤은 나도 아는 건데....

“아 이게 핸들을 한 바퀴 홱 틀어서 돌려 쓰잖여. 근데 김 씨는 그걸 가지고 앞뒤를 잘못 생각한기여.
바퀴를 잘 봐봐.”

  어디? 정말 쇠바퀴에 달린 갈퀴를 보니 반대로 되어 있다. 갈퀴로 땅을 긁으면서 돌아야할 바퀴가 반대로
되어 있으니 전혀 힘을 못 쓸 수밖에. 아니 그럼 아침에 갈 때 이야기해주지. 그걸 왜 이제야 이야기해 주나?
어찌됐든 반나절이라도 건졌으니 다행이다. 바퀴를 바꿔 끼우고 일을 하는데 어찌나 잘 되는지!

아 그냥 끝까지 혀 봐!

바퀴도 제대로 끼웠겠다. 이제는 두 번 다시 실수하지 않으리. 속도를 내는데 이상한 일이다. 영감님은 또
지나가면서 실실 웃는다. 비닐 덮는 흙이 부실한가? 그것도 아니고....이번에는 슬쩍 물어봤다.

“아저씨, 혹시 제가 뭐 일을 잘못하는 거 있나요?”

“뭐얼~. 잘 하는구먼. 아 그냥 끝까지 혀 봐!”

그럼 그렇지. 드디어 밭 안 쪽 끝까지 다 씌웠다.

근데 어라? 기계를 어디로 끌고 나오지? 밭이 전부 비닐로 덮여 버렸는데. 스스로를 가둔 꼴이 되었던 것이다.
할 수 없이 두둑 끝자락께로 기계를 끌고 나오니 씌워 놓은 비닐이 쇠바퀴 밑에서 폭폭 구명이 뚫리는 것이었다.

그제야 알았다. 영감님의 미소를. 어김없이 나타난 영감님.

“기계를 안 쪽부터 들이댔어야 하는 기여~! 일을 마치면서 기계가 빠져 나올 길을 생각해야지 무작정 바깥쪽부터
들 가면 워떡 헌디야? 나 참!”

나 참은 내가 할 소리였다. 아 내가 그걸 어떻게 알기나 한단 말인가?

냇가로 뛰어!

옥수수 모종을 심는 날이 왔다. 천오백 평 가까이 심어야 되니 아주머니를 세 명 빌렸다. 경운기로 물을 주면서
심을 계획인지라 전날부터 큰 물통을 빌려서 수도 물을 받는다고 시간을 꽤나 들였다. 그런데 또 아저씨가 웃고
지나간다. 아 미치겠다. 뭔가 이상한 게 있는 모양인데 그게 뭘까? 이번에는 준비를 철저히 해서 아저씨 코를
납작하게 해주자. 분무기도 점검하고 호스도 점검하고 물총도 점검했다.

드디어 다음날 - 아주머니들이 다 왔다. 경운기를 돌리고 물총으로 두둑에 구멍을 뚫으면서 물을 준다. 포트를
나르고 구멍에 모종을 놓고 나면 아주머니들이 잽싸게 꽃삽으로 흙을 덮는다. 그런데 앗! 갑자기 모든 일이 멈춰
섰다. 물총으로 물이 나오지 않는 것이다. 큰 고무 통에 물을 가득 채운 뒤 다시 그곳에 수도꼭지에서 호스를
연결해 놓았는데 어찌된 일이란 말인가? 물을 계속 공급하면서 쓰니 연속해서 작업이 되리라는 계산이었는데....
아 그러나 이게 웬 일 - 분무기를 통해서 물총으로 나가는 물의 양이 엄청나서 일을 시작한 지 불과 30분도 채
지나지 않아서 물이 동이 나버렸다. 들어가고 나오는 물의 양을 계산 착오한 것이다. 일당을 주고 빌려온
아주머니들은 눈을 말똥거리면서 밭둑에서 쉬고 있다. 망연자실!

순간 마치 어디에서 숨어서 지켜보기라도 한 것처럼 영감님이 짠하고 나타났다. 그리고는 던지는 말씀,

“경운기 끌고 냇가로 뛰어!”

“거긴 너무 먼 데요?”

“내가 호스 꺼내 놨어. 빨랑 가서 연결하고 끌고 와!”

농사일에 어느 정도 익숙해진 지금이야 어디를 가 봐도 물을 주려면 다 호스를 냇가나 도랑에 담그고 있음을
안다. 그러나 농사는 생판 - 책상에서 일만 하던 먹물이 그걸 어떻게 알았으리? 그렇게 일은 다시 시작되었고
무사히 옥수수 모종을 다 심을 수 있었다.

나 칠십년 배운 거야!

고추를 심고 나서 어느 정도 자라자 지주대를 세울 때가 되었다. 당시에도 농기구 점에 가면 쇠로 만든 지주대가
있었지만 단 한 푼이라도 아낀다고 마을 분들처럼 산에 가서 나무를 잘라서 만들었다. 무려 1000개가 넘는 나무
막대를 만들려니 장난이 아니었다. 어쨌든 부지런히 만들어다 고추밭 한쪽머리에 무더기무더기 지워서 쌓아
놓았다. 이제는 저 놈을 고추 네 다섯 그루당 하나씩 박아 넣고 끈으로 매주면 되는 것이다. 오호라, 그런데
지주대를 한쪽에 나란히 나누어 준비해 놓은 걸 보고 영감님이 지나가다가 또 웃는다. 나무를 너무 가느다란
놈으로 잘라왔나? 이제는 기다릴 수없다. 벌써 몇 번째이던가? 꼭 일이 터지고 나서야 알려주기를.

“저 아저씨, 또 뭐가 어설프게 됐습니까? 왜 웃으세요?”

“아니여. 잘 혔구먼. 그냥 그대로 혀봐.”

“아닙니다. 아저씨 웃으시는 거 보니까 또 제가 뭘 모르고 일을 하는 거 같은데요. 좀 미리 알려 주세요.”

“그리여? 그럼 알려주지. 나무를 고추밭 양쪽 머리에 나누어 놓아야 멀리 왔다 갔다 안 하고 지주대를 박을
거 아니여! 저렇게 한 쪽에만 놓으면 고추밭이 이렇게 긴데 가지러 왔다갔다 엄청 힘들거구먼!”

아하! 그렇구나. 에라! 그렇다면 내친김에 물어 보았다.

“근데요, 어르신! 아 그런 거를 미리 좀 알려주면 수고도 덜하고 훨씬 좋잖아요. 왜 꼭 일을 벌여 놓은 다음에야
알려주세요?”

“미리? 아 언제 김씨가 나한테 그런 거 물어 봤남? 혼자 알아서 다 허더구만 그랴? 그리고 이런 거 나도 칠십
년이나 배운 거여~!”

지금 와서도 생각해 보면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가방 끈 길다고, 도시적 잔 계산에 철저히 물들어 있는 인간이
어떻게 시골에서 초등학교도 안 나온 영감님에게 고분고분 물어보면서 했겠는가? 또 미리 일러준들 무슨 소용이
있었겠는가? 그게 무슨 말인지를 해보지 않고는 도무지 알 수가 없는걸. 그러기에 말씀은 미리 안 해도 어떤
사태가 벌어지리라는 것을 짐작하고 신경을 썼기 때문에 무슨 일이 생기면 어김없이 나타나서 해결해 주셨던
것이다. 그야말로 겉으로 표현은 안 해도 속으로는 혼자 와서 농사짓는다고 설치는 생 날 초보 농사꾼에게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고추 밭에 지주대를 세울 때 쯤 해서 동네 사람들의 '서울로 언제 갈껴?'하는 수군거림은
사라져 버렸다. 영감님은 길 가다 나를 보면

“어이구, 김 씨 하는 거 보니께 소출은 몰라도 일단 올 농사는 해내겠구먼.”

이라고 격려를 해줬다. 해외지사를 성공적으로 개척했을 때 ‘잘했다’고 회장이 건넨 격려 한 마디 보다 그렇게
감격스러울 수가 없었다. 그것은 그야말로 아무런 잔 계산이 없는, 그야말로 농사에 대한 순수함이 배어있는
농부들끼리의 교감이었기 때문이다. 그 말을 듣고 비로소 나는 농부가 된 기분이었다.



peppermint
" 근데 어라? 기계를 어디로 끌고 나오지? 밭이 전부 비닐로 덮여 버렸는데. 스스로를 가둔 꼴이 되었던 것이다.
할 수 없이 두둑 끝자락께로 기계를 끌고 나오니 씌워 놓은 비닐이 쇠바퀴 밑에서 폭폭 구명이 뚫리는 것이었다. " ^^


“미리? 아 언제 김씨가 나한테 그런 거 물어 봤남? 혼자 알아서 다 허더구만 그랴? 그리고 이런 거 나도 칠십 년이나 배운 거여~!” ㅜㅜ
2009-03-27
16:3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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