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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농의 길 10 - 가방끈 길다고 농사 잘 지을까?
새우골  2009-03-07 01:01:08, 조회 : 960, 추천 : 144



2004년 3월 22일 - 1년 간 먼저 농사를 지어본 뒤 아내와 합류하기로 하고 드디어 혼자 진천 평사리로 내려갔다.
승용차에 달랑 이불 한 채와 냄비 하나, 밥솥 하나, 사발 몇 개, 수저 한 벌을 들고 서울 집을 떠나는데 그 비장함은
그야말로 황산벌로 향하는 계백장군 못지않았다. 거처는 한 집의 창고에 붙은 쪽방을 구했다. 메주 등을 삶기 위한
아궁이를 만드느라고 임시로 만든 구들방이었는데 방은 그런대로 괜찮았지만 아궁이가 있는 부엌은 문이 엉성해서
사방으로 바람이 숭숭 들어왔다.

일은 밭 정리부터 시작됐다. 전 해에 수풀처럼 자라서 드러누운 풀을 불태우고, 겨우내 방치해 두었던 비닐을 걷어
내는데 재가 날아올라서 온 몸이 그야말로 탄광의 광부처럼 까만데 눈만 하얗게 껌뻑였다. 옥수수를 심었던 곳은
비닐이 뽑히지를 않았다. 며칠째 5천 평을 다 정리하는데 장난이 아니었다. 하루 일을 마치고 들어오면 온 몸이
재와 땀으로 뒤범벅이 되건만 더운 물이 나오는 시설이 없으니 가마솥에 물을 데운 뒤 세숫대야에 찬물과 섞어서
목욕을 했다. 3월이지만 꽃샘추위가 쌩쌩 거릴 때라 찬 바람이 사정없이 부엌을 들이쳐서 몸에 끼얹는 물이 시리게
느껴졌다.

가스 시설이 없으니 블루스타를 가지고 반찬을 만들어 먹었다. 그러니 자연 반찬은 날마다 한 가지 - 김치 찌개였다.
어떤 날은 정말 힘들어서 김치 찌개 조차도 만들기 귀찮으면 그냥 막걸리에 밥을 말아 먹고 잠들었다. 그래도
이상하게 행복했다. 새로운 세상에 대한 기대, 전혀 해보지 않은 일에 대한 도전 의욕, 3년간 별러 오던 일에 대한
실행 의지 등등이 겹쳐서 몸은 힘들고 지쳐도 정말 마음은 편했다. 아무도 보아주는 이 없어도 서운할 것도 없었다.
오로지 혼자만의 희열이었다. 그러나 집주인 아주머니와 영감님, 그리고 동네 사람들은 날마다 수군댔다. ‘창고 방
김씨 언제 서울로 돌아 간디야? 아 저 나이에 멀쩡한 사람이 왜 여기 와서 저러는지는 물러도 오래 못 갈끼여! 암만,
오래 못 가고말고. 농사는 아무나 짓남?’ - 수군대거나 말거나 일만 했다. 말로 해명하고 각오를 이야기한 들 무슨
소용이 있으랴? 오로지 행동으로 보여줄 뿐이고, 그러자면 시간이 필요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동네
사람들한테 보여주기 위해서 하는 일이 아니었기 때문에 아무런 상관이 없었다. 오로지 자신과의 싸움이었는데,
전투의지는 충만했다.

작목은 K와 의논한 뒤 고추, 옥수수, 쥐눈이 콩, 호박을 심기로 하고 밭을 만들기 시작했다. 17만원으로 중고
경운기를 사서 밭을 갈았다. 로터리는 남이 버린 것을 주워서 썼다. 생전 처음 해보는 경운기 운전을 그야말로
원 없이 해 보았다. 보름 정도를 밭 갈고 로터리로 두들기는데, 얼마나 손아귀에 힘을 주었는지 저녁이면 밥을
먹을 때 숟가락이 쥐어지질 않아서 손가락 사이에 끼우고 밥을 먹었다. 새벽 다섯 시면 밭에 나가고 해가지면
들어와 잤다.

언젠가 무슨 고전을 읽는데 원님 앞에 잡혀온 한 농사꾼이, 죄를 자백하라고 닦달하는 호령에

“하이구, 나으리 저는 해뜨면 밭에 나가 엎어지고 해 지면 마누라 배 위에 엎어지는 일 밖에 모르는 사람입니다.
제가 무얼 알겠습니까요?”

라는 대목이 있었는데 그야말로 내가 그 짝이었다.

그렇게 지내던 중 어느 날인가? 때늦은 폭설이 내렸다. 발이 빠져서 걷기가 힘들 정도의 눈이 30센티는 족히 될
두께로 대지를 덮었다. 백 년만의 봄철 대설이라고 했다. 그런데 아차 생각지 못한 큰 일이 벌어지고 말았다. 당시
방은 아궁이에 불을 안 때면 추워서 잠을 잘 수가 없는지라, 할 수 없이 바쁜 가운데도 틈틈이 산에 가서 땔나무를
해다가 불을 지폈다. 그런데 정신없이 잠을 자고 아침에 일어나 보니 소리 소문 없이 온 세상이 하얗게 변했는데,
오호라 땔나무를 쌓았던 곳으로 가보니 그대로 눈이 내리 덮여서 다 젖어 버린 것이다.

그런데 더욱 기가 막힌 것은 그 옆에 분명히 어제까지도 나란히 쌓여 있던 집주인 아저씨의 장작이 어느새 비닐을
덮고 끈으로 꽁꽁 묶여 있었다. 이런! 어떻게 된 일일까? 아침나절을 아무리 방안에 앉아서 생각해도 방은 식어
오고 땔감은 없고 도리가 없었다. 안채로 집주인 아저씨를 찾아갔다.

“아이고, 창고 방 김씨가 왠 일이여? 들어와.”

나이 일흔 넷의 영감님. 말은 안 해도 왜 왔는지를 다 아는 것 같았다. 염체불구,

“저....아저씨, 땔감 좀 쓰게 해 주십시오. 눈 녹으면 나중에 제가 채워 놓겠습니다.”

아저씨가 스윽 나를 훑어보더니 하시는 말씀

“아 그러게 미리미리 준비를 해둬야지. 나무를 한 데다가 그냥 두면 어떡혀? 그려, 갖다 쓰고 채워 놔.”

나는 ‘아저씨 장작 비닐로 씌울 때 왜 저한테는 이야기 안 해 주셨어요?’라고 차마 묻지 못했다. 인사를 하고
돌아서는 뒤통수에 대고 독백처럼 하시는 말씀

“어이구 웬 놈의 눈이 이 봄철에 난리여? 하늘을 보니께 쉬 그치지를 않겠구먼. 어이구 밭도 갈아야 되는디...
.허리 아파 죽겠구먼. 누가 대신 갈아주는 것도 아니고”

나는 아무리 하늘을 봐도 눈이 그칠지 말지를 알 수가 없었다. 그렇다. 아저씨는 대놓고 말은 안 해도 나에게
한 수 크게 가르쳐 준 것이다. 자기 장작 덮을 때 친절하게 알려주거나 같이 덮어 주었다면 오늘날 이 때까지
이렇게 기억이 깊이 남아 있을까? 누가 대신 해주는 것이 아니라는 독백이 엄청 크게 들렸다. 그리고 가슴 속에
커다란 울림이 들려 왔다. 무엇이었을까?

‘가방 끈 길다고 농사 잘 짓는 거 아니고, 의욕만 있다고 시골 살이 되는 거 아니다’라는 사실이었다. 석, 박사가
무슨 소용이랴? 하늘을 봐도 도통 모르겠는걸. 그리고 눈 올 거라고 뉴스에서 떠들어도 장작 생각은 까마득히 잊고
있었는걸.

영감님 장작을 아궁이에 때면서 문득 ‘이등병의 노래’가 떠올랐다. ‘이제 다시 시작이다. 젊은 날의 꿈이여!’
그렇다. 학벌도, 나이도, 전직 임원도 다 소용없다. 그야말로 이등병이다. 이제 다시 시작이다. 쏟아지는 함박눈을
바라보며 입술을 깨물었다. 그리고 하루 종일 원 없이 잤다. 눈 덕분에.



peppermint
가스 시설이 없으니 블루스타를 가지고 반찬을 만들어 먹었다. 그러니 자연 반찬은 날마다 한 가지 - 김치 찌개였다.
어떤 날은 정말 힘들어서 김치 찌개 조차도 만들기 귀찮으면 그냥 막걸리에 밥을 말아 먹고 잠들었다. ....


... ㅜㅜ... ㅜㅜ
2009-03-27
16:3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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